1Q84

Posted at 2009/11/24 11:42// Posted in preference


비슷한 나이의 여자를 사귀고 사랑에 빠지고 성적인 관계를 갖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몰고 올 책임을 떠안는 건 그가 그리 환영하는 바가 아니었다. 거쳐야 할 몇몇 심리적인 단계, 가능성을 슬쩍 내비치기, 피하기 힘든 기대치의 충돌...그런 일련의 번거로운 것들은 가능하면 떠맡고 싶지 않았다.
책무라는 관념은 항상 덴고를 겁에 질리게 하고 꽁무니를 빼게 만들었다. 그는 지금까지 책무가 수반되는 입장을 교묘히 피해가면서 인생을 살아왔다. 복잡한 인간관계에 뒤엉키는 일 없이, 규칙에 얽매이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빌리지도 빌려주지도 않고, 혼자 자유롭게, 아주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그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웬만한 불편은 참아낼 용의도 있었다. (534-535)

ㅡ1Q84, 무라카미 하루키 

이게 바로 내가 지적했던,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가진 반집단·무기력·사회부적응적 책임회피주의. 요컨대  별 볼 일 없는 룸펜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건실한 사회 구성원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도무지 대책없는 개인주의에 경악하는 거다. 덴고가 남자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러면 안된다라기 보다는 최소한 나의 상대는 이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러니까.

그에 반해 아오마메가 됐든 미도리가 됐든 하루키의 여자들은 비교적 명석하고 이성적이며 독립적이다. 하루키는 진보주의적 페미니즘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기 때문에 이건 그의 내면에 숨은 마초이즘 및 피해의식의 역설적 설정이라고 해야할지, 일단 나는 그가 보이는 성에 대한 집착이 대단히 병리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가설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하도 지지부진한데다 피터 훼, 알랭 드 보통의 책과 섞어 읽느라 마지막 장을 덮는데 거진 한 달이 걸려왔던 상편과는 반대로 하편부터는 전개에 무시무시하게 가속도가 붙어 어젯밤에 휘달려 읽다 새벽녘에야 잠들었다. 흙바닥에 구멍을 뚫고 그 아래 거대한 개미들의 왕국의 건설하는 것은 쉬울지 모르나, 땅속의 개미굴을 숨기고 덮어 아무도 그것이 개미왕국의 입구라고 가늠할 수 없도록 작은 구멍만을 표시하는 일은 어지간해서는 힘든 작업이다. 맥거핀 하나없이 간결하고 양심적인 내러티브 교차에 있어 하루키의 이 능력은 분명  인정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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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ly comment to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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