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s in Love
Posted at 2010/03/01 20:47// Posted in life in Seoul16. 어쩌면 어떤 사랑은 아름답거나 고귀한 존재와 사랑의 동맹을 맺음으로써 우리 자신과 우리의 약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충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사랑해준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우리를 애초에 사랑으로 몰고 간 것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믿게 되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단 말인가? (67)
19. 오후 늦게 나는 그녀의 아버지와 정원을 거닐었다. 30년의 결혼생활을 겪으며 독특한 결혼관을 가지게 된 근엄한 남자였다.
"내 딸과 자네가 서로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네. 나는 사랑 문제에 전문가가 아니지만 한 가지는 말해두겠네. 결국 누구와 결혼하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가 않네. 처음에 좋아한다고 해도 끝에 가서는 좋아하지 않을 수 있네. 처음에는 미워하다가도, 결국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도 있지." (84)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Kiss&Tell'이나 'Essays in Love'와 같은 단순하고 소박한 제목들이 어째서 바다를 건너오며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든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와 같은 말랑한 칙릿 수준으로 바뀌었는지 궁금하다. 아무튼 드 보통의 폭풍이 한참 지나갔기 때문에 이제야 그를 읽는다. 대중적 인기몰이의 선입견에 가려 이토록 똑똑한 사람인 줄 몰랐는데 알고보니 그는 세밀한 관찰력과 명민한 표현력을 지닌 철학자였다. 스탕달이나 무라카미 류 뺨치는 회의주의적 연애관의 소유자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가 마르크스 주의,라고 정의하는, 쉽게 설명하면 '왜 잡은 고기에는 더이상 떡밥을 주지 않으며 내가 남을 좋아하다가도 남이 나를 좋아하기 시작하면 급격히 질려버리는가'에 대한 그럴듯한 철학적 고찰은 경탄할 만하다. 다만 두려운 것은 내가 연애의 미숙한 폐해로만 치부하던 이러한 성향이 그의 주장대로라면 노소를 불문한 전인류적 습성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고약한 버릇에서 벗어난지 이미 오래라고 자부하던 나로서는 다분히 당황스러운 지적이다.
이 책이 빛나는 또 한가지 이유는 정영목이 역자이기 때문인데,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모든 외서들의 번역가 중 가장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