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거리

Posted at 2006/07/20 22:20// Posted in laboratory'

일터든 집이든 어딜가나 참새처럼 입을 벌리고 있는 식구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병두는 오늘도 마음이 바쁘다. 비참하게 무릎도 꿇어보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 배째라고 드러눕기도 했고 작심하고 형님을 쑤시기도 했다. 더이상은 이렇게 살지 않겠다고 작심한 이후 한 건을 성사시키고 그는 꽤 괜찮은 스폰도 구했고 첫사랑과도 재회했으며 입구녕들에게 삼겹살도 먹였다. 이제 쨍하고 해뜰 날만을 기다리면 끝일 줄 알았는데 냉혹한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독해지자 다짐했지만 주변의 날고 기는 더 독한 놈들에 의해 고꾸라지며 그는 비열한 거리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는다.


황 회장은 병두에게 참 독하다며 놀랐지만, 과연 그는 상철과 부장검사를 제거한 면면에서 보듯 그리 특출나게 독했을까. 알고보면 죽일 때 상대방과 마주친 눈이 평생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몸을 떨며 눈물짓는 건달이다. 실연의 여파 때문에 마음이 약해져 해야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의 경계를 잊었고 우정이 너무 깊어 제 때 했어야 했을 작업을 묻었다. 착하다는 의미가 무능함과 동의어로 받아들여지는, 잔인하고 지독해야 살아남는 비열한 거리에서 병두는 불행히도 이렇게 너무 착하고 소박했다. 첫사랑이 싫다고 하면 금방이라도 건달 짓을 그만둘 작정인 병두에게 땡벌을 외치는 식구들보다는 팥칼국수를 함께 먹어주는 곁의 여자가 더 소중한 것이다.


이런 병두를 등지고 <비열한 거리>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 누군가의 등을 지지대로 밟는 지옥같은 세상을 적나라하게 비춘다. 제 것 챙기기에 바쁜 상철, 우정보다 성공을 좇은 민호,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종수, 비밀과 사람을 함께 묻는 황회장 모두 병두의 뒤통수를 친다. 등을 휘감은 용처럼 컸던 그의 꿈은 배신과 위악의 늪에서 채 펴보지도 못하고 날개를 접고 말았다. 내가 필요한 것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모두 알았지만, 마음 여린 병두는 스스로 원하던 위치에 올라갈만큼의 '비열한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 먹이사슬같은 이 거리에서 비루하게나마 목숨을 부지하는 방법은 남들보다 한 발 더 비열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스물아홉이 되도록 누구 하나 제대로 좋아해본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이 가련한 남자가, 결국 초라하게 바스라져 버린 이유다. http://mistyfrost.com

http://www.mistyfrost.com/trackback/24 관련글 쓰기

  1. 비열한 거리_비열해진 거리 // namgoon.com 2006/10/08 16:34 [Delete]

Lovely comment to Rachel

Name *

Password *

Link (Your Homepage or Blog)

Comment

Sec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