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Wonderland
Posted at 2007/08/07 15:14// Posted in go canucks go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의 왕좌를 몇 년째 내놓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밴쿠버가 꿈과 환상의 원더랜드는 아니다. 그래 서울과는 비교할 수 없이 살기 편하고 사람들 친절하고 공기좋고 아름다지만 여기도 사람사는 곳인데 못쓰겠는 점도 많지, 그치만 그런거 다 알면서도 여전히 너무 사랑해, 뭐 다만 나한테는 이를테면 이런 거지.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다고 하는 도시에서 삼주 후면 경 체류일년 축,하도록 버티고 있는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게 되면서 얻은 수확이다. 무조건 퍼부었던 예전같은 애정보담도 비교적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내가 사는 곳을 평가하게 된거.
최근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헤이스팅스를 두 번이나 지나가게 됐다. 마약의 거리 헤이스팅스에 대한 악명은 밴쿠버 주민이라면 입국과 동시에 지겹도록 듣는다. 이곳에서 배회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약에 취해있고, 도덕성이 결여됐고,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내 룸메가 들어준 비유를 알려주자면,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목걸이를 가르키면서 헤이스팅스의 여자가 저거 예쁘다, 나 저거 가지고 싶어, 하면 헤이스팅스의 남자는 터벅터벅 걸어가서 그 사람을 죽이고 목걸이를 가져와 여자에게 갖다준다. 그런 애들이다 걔네는. 지난 주에 차이나타운에서 놀다가 개스타운으로 올라오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땅한 버스가 없어서 걸었다. 버스고 자시고 간에 사실 펜더에서 파웰까지 가려면 코도바와 헤이스팅스, 두 블럭만 올라가면 그만이다. 더구나 볕좋은 일요일 오후였다. 헤이스팅스 지나기가 꺼림칙했지만 사실 차이나타운도 비올 때 가면 상태 안좋은 애들 많이 보인다. 그까짓 두 블럭, 백미터도 채 안되는데 눈감고 뛰면 그만이지 싶었다. 그런데 코도바에 발을 디디는 순간, 아뿔싸, 뉴욕서 밤 열한시에 전철 잘못타는 바람에 할렘가로 떨어졌을 때보다 삼천사백배 정도 더 무서웠다. 굳이 묘사하자면 '신이 만든 지옥이라는게 진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싶었다. 아귀가 득실거리는 생지옥을 보는 것 같았어. 진동하는 마리화나, 홈리스, 후커, 부랑자, 드럭딜러...반경 일키로 내에서 정상인은 우리 둘밖에 없었다. 글로 다 묘사할 수 없는게 안타까운데 나는 진지하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 눈 딱감고 뛰려고 했지만 그러면 시선이 집중될까봐 뛰어 도망가지도 못했다. 그까짓 두 블럭,을 먼저 주장했던 헨리의 팔을 붙잡았는데 얘도 옆에서 떨고 있었다. 나중에 룸메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랬다. 난 헤이스팅스를 '발로' 걸어가는 정상인들을 가끔 볼 때마다 쟤네는 과연 뭘 몰라서 저러는 건가 아니면 정상이 아니라서 저러는 건가 싶었는데, 넌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야?
두번째로는 파웰 스트릿에서 하는 재패니즈 페스티벌을 구경하러 갔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려면 헤이스팅스를 통과하는 십번 버스를 타야했다. 경험도 한 번 있고 해서 정말 싫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과연 십번 버스는 여느 다운타운의 버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약에 취한 그런 애들은 약 사느라 돈이 없기 때문에 버스에 올라타지는 못하는 대신 남자들은 개를 베고 정류장 의자에 널부러져 있거나 여자들은 빠진 앞니를 드러내 놓고 활짝 웃으며 소리를 치며 버스 승객들에게 손을 흔드는데 정말 소름끼친다. 손도 흔들고 몸도 흔들고 그러다가 비틀비틀하고. 처음 헤이스팅스를 걸었을 때는 극한의 공포에 질려 땅만 보며 지나쳤었는데 이 때는 버스도 탔고 해서 좀 찬찬히 밖을 관찰해봤다. 밴쿠버의 역사를 품고있다는 개스타운에서 단 두 블럭, 다운타운에서 가장 번잡하고 화려한 랍슨에서 네 블럭. 거리라기 보다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 그 곳은 아 정말 가관이었어.
새로 이사온 집은 동쪽으로는 예일타운, 서쪽으로는 그랜빌과 맞닿아 있는 굉장히 아이러니컬한 장소에 있다. 밤새 거리의 아이들이 유리창 깨고 싸우는 소리 들으며 자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뒷편으로 나가면 출근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 개 데리고 나와서 브런치 먹고있는 거리에 다다르는 그런 곳. 그랜빌 스트릿은 영문도 모르게 다운타운에서 슬럼화가 가장 빨리 이루어지고 있다. 다행히 약하는 애들은 별로 안 보이는데 클럽과 술집이 하도 많아서 워낙 사고를 많이 친다. 과거에 홈스테이를 버나비에서 하고 요즘은'사람 살 곳이 못되는' 써리로 출근하면서 산전수전을 다 겪고있는 내 룸메는 그랜빌 클럽에서 일어나는 총질을 심심치 않게 목격했다고 자랑했다. 친구랑 싸우고 지 성질 지가 못 이겨서 클럽 문에다 대고 총질하는 남자애 때문에 서큐리티들이 출동나와서 스텝백- 외치며 바디벙커 밀어붙이고 진압했는데 완전 뿅가게 멋있었다고. 이런 애들은 사실 소심해서 주로 문이나 천장에 쏴대는 조무래기들이라 사상은 잘 안 생긴지만, 미국 애들이 캐나다는 총기사고 없다고 맨날 부러워 하는데 이런거 보면 사실 또 그렇지도 않다니까. 아무튼 얘는 하파 이자까야에서 밥먹다가 옆테이블끼리 시비붙어서 스태빙하는 것도 두 눈으로 봤대. 피 철철나고 여자애들 울고 찌른 애는 도망가고 아수라장이 되어서 덕분에 이 틈을 타 그 비싼 하파에서 돈 안내고 그냥 뛰쳐나왔대. 아 어쩐지 부러운 이 기분은 뭐야?
광역을 통틀어 두번째로 치안이 좋은 곳이라는 유비씨에서만 거진 일년을 살았다. 텀엔드 때 게이지 애들이 밤새 술먹고 티비를 비롯한 각종 전자제품을 창문 밖으로 내던져서 머리통 깨질 불안에 시달렸던 걸 제외하면 사건사고라고는 딱히 없는 곳에 살다가 다운타운으로 나왔더니 뭔가 완전히 다른 도시에 온 기분. 환상은 끝났지만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일단 몸조심은 하고.
그대로 130가까지 논스톱 질주~ 전철 안 반경 오백미터 내에서 안 까만사람(..) 저와 제 친구뿐~
갈아타려고 내렸는데 찬바람이 쌩~ 흑인 애들 헤이! 헤이! 부르고~
.......(맨해튼의 추억은 방울방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