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얘기들 27
Posted at 2008/02/11 18:03// Posted in fragments
직장생활 하는 사람들이 점심에 뭘 먹을까와 밥 먹으면서 무슨 얘기를 할까가 옛날부터 너무 궁금했었는데, 적어도 이 바닥에서는, 밥 먹으면서도 개봉영화 소식과 예매순위와 이웃 수입사 얘기를 늘어놓고, 그것도 아니면 배우들 뒷담화라도 주절댈만큼 하루 종일 영화 얘기만 한다. 직업이라서가 아니라 우리는 영화 그 자체를 참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굉장히 큰 메리트다.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화 확정. 일단 태오-지현우. 나쁘지 않다. 문제는 오은수-김정은. 여기서부터 살짝 꼬였다. 차라리 장진영이면 모를까, 은수는 캔디형 캐릭터가 아니란 말야. 최악은 김영수-이선균. 이건 거의 대재앙 수준...더 황당한 일은 유준이는 아직 캐스팅도 미정이라는거. 님하 지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우리 유준이 무시하나효. 유준이 살려내라 얼릉. 어차피 변화한 매체에 큰 기대를 거는 것부터가 애초에 그릇된 일이겠지만, 괴로운건 어쩔 수 없다.
낮에 먹는 데이퀼과 세트로 이루어진 나이퀼이라는 전설의 약이 있다. 오월에 페어뷰에서 신열로 사경을 헤맬 당시 중도귀국의 가능성을 억지로 낮춰준 이 고마운 북미산 감기약은 약발 끝내주기로 소문한 한국 의약계의 명성이 무색할 정도로 슈퍼 드라우지에 효과 만점이다. 길고 긴 연휴를 시체놀이로 홀랑 까먹어 버리고 출근하기 싫다고 울부짖다가 겨우 나온 사무실이라 그런지 몸살이 났다. 점심 시간에 짬을 내 약국에 다녀왔지만 쌍화탕을 원샷하며 도무지 나이퀼만한 약이 없다는 절실한 그리움에 몸부림친다.
지난 달의 나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퇴근 시간마다 압구리 일대로 몰려드는 심의 후 표현 멋쟁이들, 심의 전 표현 된장 피플들의 물살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지친 어깨를 짊어지고 집으로 향하는 한 마리 연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오늘도 점심 시간에 지나친 회사 옆의 커피빈 신사점에서는 엠넷의 트렌드 리포트 필에 등장할 법할 까페 남녀들이 방학을 맞아 톨사이즈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라떼를 앞에 두고 담소 중이었다. 이상 백수 및 학생의 추억이 진심으로 그리운 임시 직장인.
근 3주간 야근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었던 베를린 영화제가 설 연휴동안 시작됐고, 이사님과 팀장님이 베를린에 가셨기 때문에 이번 주에는 EPK나 번역하면서 좀 널럴해지나 기대했지만 일꾼 두 명의 빈자리는 너무 컸던 것이다. 선재 통관에 문제가 생겨서 팀장님 대신 관세사와 통화했는데 그쪽에서 쓰는 단어의 9할이 25년 인생에서 완전히 듣보잡. 내가 모르는 세상이 너무 크다.
미국 작가조합 파업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위대하셔서 작년 깐느 때부터 AFM, 이번 베를린 EFM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건질만한 영화가 없다는게 중론이다. AFM 때는 "베를린에서-"라더니 이번 베를린에서는 "깐느에서-"다. 아니 평균 이상은 해야 살까 말까를 하지. 여담이지만 지금 베를린은 <There Will Be Blood>가 다 휩쓰는 기세던데 홍상수의 <밤과 낮>도 잘됐으면 좋겠다. 물론 이선균이 특별출연해서 그런 건 아니다.
매주 월요일이면 이렇게 전주의 박스 오피스 기록이 모든 사원에게 전달된다. 개봉 중인 영화마다 스크린을 몇 개 걸고 몇 명을 불러 모았는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가히 '박스 오피스 전쟁'이다. 이걸 보면서 마케팅 부족으로 망한 영화를 긍휼히 여기기도 하고 정말 재미없는데 마케팅으로 BEP 겨우 맞출 것 같은 영화를 질투하기도 하고 어느 배급사가 스크린 몇 개를 독점했는지를 분석하기도 한다. 지난 설 연휴와 주말 5일간에는 총 1200만명이 넘는 관객이 그동네 어딘가의 극장을 찾아갔다. 난 지금은 외화를 하니까 반드시 한국영화를 봐줘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고, 다만 직배사 영화가 잘되면 좀 열받는다. 그러면서 직배사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1인.
곧 개봉하는 A모 영화는 하도 안 팔려서 원래 애스킹의 무려 1/20 가격에 낙찰됐고, 지금 걸려있는 B모 영화는 괴로울 정도로 지루해서 감독이 배급시사 후에 재편집에 들어갔었고, 반대로 기대감이 높지 않았던 C모 영화는 시사 후에 모든 관계자들이 깜짝 놀라며 투 썸즈 업을 외쳤다. 알려진 명성과는 달리 빛좋은 개살구인 D, 오너에게 쌍욕을 들어야 하는 E, 부회장부터 팀장까지 다 제정신이 아닌 F 등의 배급사, 정체를 알 수 없는 심의 기준을 가진 영등위, 분급 11만원의 미스테리한 심의료까지, 아는 사람이 들으면 데굴거릴만큼 재미있는데 모르는 사람에겐 지나치게 심드렁할 이런 얘기들. 영화가 재미있는지 재미없는지를 배급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방법, 시사회에 공짜로 참석하는 방법, 베일에 싸인 영화사 알바의 실체 따위의 이야기를 나눌만한 말 통하는 사람이 요새 없다. 그러니까, 히스 레저의 요절에 함께 통탄할 수 있는 그런 사람.
덧 :: 나이퀼 이번에 보내주는거엔 못 들어가고 내가 나중에
'그거'랑 같이 따로 보내줄게.... (도착하지 전까지 낫겠지만.. for later..)
그거만큼 듣는걸 보질 못했다 정말. 대신 좀 무서워서 일할땐 못먹겠음.
난 데이퀼 먹어도 잠 ㅜㅜ
난 히스레저 죽음에 같이 통탄할 순 있어.
엉엉
부록빽..
내 주변에는 히쓰레저의 죽음을 통탄하는, 어느 퀴어영화 DVD 부록용 단편 퀴어영화에 주연 출연했던 남자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