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경험자의 이야기 5

Posted at 2009/01/19 19:17// Posted in fragments


면접은 면접관이 면접자를 평가하는 자리이기도 하고 거꾸로 면접자가 면접관을 통해 그 회사를 평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면접에 임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디든 붙여만 주십쇼 굽신굽신 정신이 없어서 그런 기분이 사치라고 느껴질테지만, 아무리 좋은 회사라도 면접진행과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형편없다면 앞으로의 모든 비전도 형편없을 가능성이 크다는게 나의 지론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기업의 면접장에서도 이런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회사의 분위기와 내 성향이 맞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은 곳도 있다. 면접을 본 여섯개의 회사에 대한 짧은 메모. 시간 역순으로 정리했고 고소당할까봐 무서워서 이니셜 처리했다. 예리한 사람이면 어딘지 금방 알겠지만.

P-: 임원면접 때 옆 회사의 사장님이 물으셨다. "살면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모든 면접 중 가장 당황스러운 질문이었다. 내가 준비해왔던 전체 예상질문 리스트에 이 질문은 없었다.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서 몇 초간 멍하니 앉아있었다. 정신없이 쏟아지던 문상무님의 까칠한 질문을 방어하느라 반쯤 혼도 나갔었다. 이 때 내 자리에서 일곱걸음 떨어져 있던 곳에 계시던 분들을 지금 모시고 있다는게 신기하다.

T-: 가망없던 경쟁률을 뚫고 한 명 채용에 최종 세 명까지 올라갔었다. 워낙 좋은 회사라 너무 가고싶었다. 임원면접에서 사장님이 우리 셋을 모두 탐탁지 않아하시는 느낌을 받아서 불안했는데, 결국 그들은 이번에 아무도 채용하지 않았다. 두시간 가까이 초압박으로 진행됐던 실무면접에서 팀장급 면접관들이 굉장히 똑똑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확실히 면접관들의 지적 수준과 태도를 보면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판단할 수 있다.  

S-: 신생회사지만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고 모회사의 평판이 워낙 좋아서 기대를 많이 했으나 너무나 형편없는 면접관들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면접 중 한 임원이 나와 내 옆의 지원자에게 모교인 명덕외고와 선화예고는 서울대를 매년 몇 명 보내냐는, 참으로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그는 자식 둘이 명덕과 선화를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십오분 예정이었던 면접은 그 질문을 포함, 양질의 질문 하나 없이 십이분만에 끝났고 그들은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H-: 여덟시 반에 면접자 전원을 집합시켜 놓고는 '서류전형 때 지원서 일찍 낸 사람 순서대로' 면접을 진행시켰다. 나는 세시간을 기다리다가 면접에 들어갔다. 삼십여분간의 단체면접에서 나에게 돌아온 질문은 단 한 개, "게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답변을 일분간 하고 면접이 끝났다. 이미 인적성 때부터 가장 형편없는 회사였다. 실무면접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는데 설사 통과했더라도 다시 찾아가고 싶지않았다. 오너십이 강한 회사치고 멀쩡한 회사 없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H-:
학교 추천으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한명 채용에 서른명이 와 있었고 그 중 스물 다섯명쯤이 남자였다. 면접 질문도 술을 잘 마시냐는 둥, 남자를 뽑으려 한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무엇보다  창의성과 자유로움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룹 특유의 남성적이고 조직적인 회사 분위기가 나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지원자들의 자소서를 미리 샅샅이 읽어놓고 심층적으로 질문하는 면접관들의 모습은 참 좋았다. 이런 회사 생각보다 많지 않다.

C-: 총 네 종류의 면접을 하루 반나절동안 타이트하게 진행한다. 미디어와 심지어 경영지원 파트까지 모두 같은 기준에서 아이디어 내공을 쥐어짜내야 하는 면접이다. 면접 기준이 크리에이티브에 집중되어 있어서 말 그대로 웬만큼 비범한 인간이 아니면 눈에 띄지도 못한다. 구직활동의 첫 면접이라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올해 다시 면접을 봐도 합격하진 못할 것 같다. 내 능력이 회사의 우수성에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일깨워준, 하지만 여전히 감사한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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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1/20 10:34 [Edit/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Lovely comment to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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